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해왔던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잇따라 보수 성향 대법관이 임명되며 보수화된 대법원이 거의 반세기 동안 유지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이로써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장해온 낙태 권리는 사라지고 앞으론 주 정부가 낙태를 허용할지 말지 결정하게 되었다. 보수성향 지역에선 낙태를 금지하거나 크게 제한할 걸로 예상되는데 미국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에서 그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내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낙태 합법' 판결 폐기의 의미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처벌하는 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임신 6개월까지 여성의 임신 중절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른바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불리는 이 결정은 미국 사회를 바꾼 역사적 판결로 꼽힌다. 무효화하려는 몇 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49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이 판례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관 9명 중 보수성향의 5명이 찬성을 했다. 이 중 3명은 도널드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임명한 사람들이다. 새뮤얼 앨리토 미국 대법관은 다수 의견서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처음부터 오류가 심각했으며 나쁜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헌법을 준수하고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임신중절은 헌법과 관련이 없어 대법원이 관여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낙태권의 존립결정은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정부가 판단하게 된다. 외신들은 이번 결정이 수십 년 만에 가장 충격적인 평결이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미국을 1800년대로 돌려놓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둘로 갈라진 미국.. 즉각 낙태 금지 vs 원정비용 지원
미국 사회는 바로 둘로 쪼개졌다. 보수성향의 주에서는 즉각 모든 종류의 낙태가 불법이 됐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 곳들도 있다. 반면 진보성향의 주는 다른 주에 사는 사람이 찾아와 낙태하는 걸 보장하겠다고 했고 애플과 디즈니 등 일부 기업들은 낙태 원정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대법원의 결정이 알려지자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들은 환호 했고 미국 전역에선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각 주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렸다. 미주리와 루이지애나 등 9개 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마자 낙태가 불법이라고 선언했고 12개주도 낙태를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임신주수와 관계없이 전면 불법이고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의 예외를 두지 않는 것도 5개주가 넘는다. 반면 뉴욕과 워싱턴 등은 즉각 여성의 낙태권을 보호하는 주 법안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워싱턴 주는 다른 주 거주자들에게도 낙태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애플과 메타, 스타벅스 등은 낙태를 위해 다른 주로 원정을 가야하는 직원들을 위해 비용을 보장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의 낙태권은?
낙태권,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왔을까? 1953년 생긴 낙태죄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66년만에 없어지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이 같은 판결을 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건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들로 절차에 따라 관련법을 개정하는 건 국회의 몫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헌재가 주문한 2020년 12월 31일까지 국회는 이 법을 고치지 않았다. 국회가 손을 놓고 있으면서 3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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